오늘의 시...여행자를 위한 서시(류시화)
여행자를 위한 서시 (류시화)
날이 밝았으니
이제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여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중략)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후략)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나를 위한 싯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추운 새벽 잔차를 끌고 집을 나서는 내가 행복한 건지
삼봉 밑둥을 돌다가 창골 마을에 들어서니
어느 집 앞마당에 가마솥을 걸고 장작을 태우면서 활활 열기를 내는군요.
불꽃을 보니 나도 모르게
마당 옆에 잔차를 세우고 불 가까이 다가 갔습니다.
불을 만지던 할머니 언 손이나 녹이고 가라고 자리를 비켜주네요.
메주 콩을 쑤고 있는 중이랍니다.
무심코 불타는 장작을 바라보다보니
허벅지가 녹고 손도 풀리고 마음도 풀리면서
삼봉에 오르는 것을 포기할려다가 힘을 얻고 올랐습니다.
아마 메주콩이나 얻어 먹고 떠났더라면 날라서 삼봉에 오르지 안했을까..ㅋㅋㅋ
삼봉의 새벽하늘이 심상치가 않았습니다.
어째튼 오늘 낙서장에 군불을 지폈습니다.
이 온기가 온아 모두에게 퍼지고
서로의 마음을 녹이고 즐거운 하루의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