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유
사는 이유/최영미
투명한 것은 날 취하게 한다
시가 그렇고
술이 그렇고
아가의 뒤뚱한 걸음마가
어제 만난 그의 지친 얼굴이
안부없는 사랑이 그렇고
지하철을 접수한 여중생들의 깔깔 웃음이
생각나면 구길 수 있는 흰종이가
창밖의 비가 그렇고
빗소리를 죽이는 강아지의 컹컹거림이
매일 되풀이 되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그렇다
누군가와 싸울 때마다 난 투명해진다
치열하게
비어가며
투명해진다
아직 건재하다는 증명
아직 진통할 수 있다는 증명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
투명한 것끼리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술이
오르지 않는다.
그래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요....투명해 질려고.
내가 잔차를 타고 숲을 찾아 갈 때 한없이 투명해짐을 압니다.
숲속 푸른 나무을 만날 때
길가 수줍은 듯 곱게 핀 들꽃을 만날 때
심한 언덕길을 오르면서 땀방울을 쏟아 부을 때
싱그런 싱글길을 바람소리와 함께 달릴 때
내 속에 들어있던 그 못마땅한 것들이 사라지면서
한없이 투명해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정말 내가 건재함을 증명하며
아직 살아 있다는 무엇을 느끼는 시간입니다.
투명함을 얻기위해 지치도록 투명하게 싸운 날은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기분 좋은 날입니다.
투명함을 얻기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지친 일상과 피곤한 찌꺼기를 비우고 즐거운 시간이 되시고
그 투명함에 많이 취하여 돌아 오시길 빕니다.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투명함을 얻기 위하여 잔차질 열심히 합시다.
그리고 잔차질 후 시원한 그것....ㅎㅎㅎ.
취하지는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