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고양의사회지 창간호)...
이삿짐 정리하다가 보니 2003년도 고양의사회지 창간호에 실린 글이 하나 있네
"마 라 톤"
정확하게 지금으로부터 5년 전 겨울부터 시작되었다.
그해 겨울 새벽부터 을씨년스런 아파트 숲을 헤치고 고즈넉한 주택가를 지나
구릉같은 정발산을 오르내리는 운동, 흔히 조깅이라는 것을 시작하였다.
새벽마다 뛰어 다닌던 그 길 주택가에 그 해 새로 당선된 대통령의 집이 있어
갑자기 그 숱한 전경들이 깔리고 그 눈길들을 헤치고 달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의 발길을 호수공원으로 내몰았다.
호수공원을 뛰면서 아파트 숲으로 치장된 이곳에 그래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있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그 아침의 감미로움을 의사회 휴게실 온라인상에
글을 띄우면서 나도 모르게 서서히 뜀박질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호수공원을 달리는 사람들이 한 둘씩 모이고 동호회가 생기고 달리는 주법을
강의 받기도하고 때마침 불어오는 마라톤 바람을 타면서 여기 저기 생기는
마라톤 대회를 꿈꾸기 시작하였다.
그 해 새 봄 한강을 달리는 서울 마라톤대회 하프코스에 도전하면서부터 고행이 시작되었다.
제대로 준비 안 된 몸으로 남 따라 나가 본 첫 대회는 잊지 못 할 일이었다.
첫 출전으로 한강의 아름다움을 알았고 겨울 강 바람의 매서움도 알았다
그리고 골인점이 멀다는 사실도 알았다.
첫 도전에 안 새로운 사실은 마라톤의 즐거움은 완주에 있다는 것과
달리는 중간 중간에 준비된 물맛이 기가 막히다는 것과
완주 후 제공되는 도시락 맛이 꿀맛이라는 사실.
그 긴 거리를 상쾌함과 부픈 가슴으로 시작하여 나도 모르게 아 힘들다하는
거리를 지나 왜 이런 일을 시작하였나 하는 후회와
이제 다시는 이런 무모함을 벌이지 말자는 다짐으로 골인점으로 다가선다.
그리고 골인점을 지나 내 기록을 확인하고 빈사의 상태로 이내 길게 눕고 말았다.
잔디밭에 벌렁 누워 푸른 하늘에 길고 깊은 숨을 내 쉬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기록을 단축할 수 있을까
체중을 좀 더 줄여야하지 않는가
연습의 강도를 더해야하지 않는가
다음 대회는 어딘가...
사람의 간사함이 헐떡이는 가슴을 타고 솔솔 머리를 맴돈다.
그 후 너댓번의 하프마라톤 출전의 기회가 있었고
출전 할 때마다 기록도 조금씩 단축되었다(그래봤자 겨우 두시간 이내이지만)
어떤 때는 부상의 힘겨움도 있었고 연습의 지루함도 있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풀코스의 도전은 엉뚱하게 다가왔다.
부상에서 아직 완쾌되지 않아 출전을 생각지도 않다가
마침 동호회에서 남은 배번으로 동아마라톤 출발점이 광화문에 서게되었다.
서울의 중심부가 멈춘 상태에서 처음 가져보는 풀코스의 두려움과
아직 몸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불안을 안고 레이스는 시작되었다.
하프를 뛰는 사람들이 끝나는 지점에서 그들과 함께 그만 끝내
버릴까 하는 유혹을 물리치고 무거워 오는 다리를 움직였다.
얼마큼 뛰어온 것일까
이제 얼마 남았는가 이런 저런 생각이 가득 차다가 무언가 휭하고
가슴과 머리가 텅 비워지는 듯한 시간이 있었고
아 이제는 더 이상 되지 않는구나 하면서 뛰던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멈추고 걷기 시작하였다.
길가에 앉아 쉬는 사람들과 같이 털썩 주저 앉아 노닥대고 싶고
뒤 따라 오는 낙오자를 줍는 뻐스에 몸을 던지고 싶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달렸고 골인점인 아스라이 보이는 운동장이 조기인데
길 가에서 쳐주는 박수소리와 환호소리에
다시 달리고 달리고 ....
그 긴 풀코스의 사투는 거의 다섯시간이나 걸리고 끝을 맺었다.
이제 마라톤대회 출전을 접은지는 오래됬다.
그냥 아침마다 아파트 사이에 끼어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맴돈다.
무엇보다 발에 와 닿는 땅의 감각이 좋다
그리고 건강삼아 걷는 할머니들의 두런 두런거리는 소리가 좋다.
다람쥐 체 바퀴 돌리듯
운동장을 맴 돌면서 내 건강을 지키고
아이들이 울음소리 벗삼아 진료실을 한 구석에서
따슷한 손의 온기로 차가운 청진기 머리를 감싸고
그 청진기로 어린아이들의 가슴에 대면서 주문을 외어본다.
건강하게 자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