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에 공감한다.
어쩌다 뒤늦게 용재 오닐의 자서전적 에세이 공감(Ditto)을 읽었다.
글중에 정말 공감하는 부분을 옮겨 적는다.
우리의 삶은 경쟁으로 가득 차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쟁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예술이나 학문처럼 어떤 분야를 너무나 사랑하여
평생을 그것에 건 사람이라면 경쟁이란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느 분야에나 경쟁을 해야만 하는때가 있고
상황을 경쟁적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혼자 중얼거린다.
"이렇게 아름다운데 왜 경쟁을 해야하지?"
음악을 놓고 경쟁한다는 것은 정말로 무의미해 보이지만
어릴 적부터 음악을 공부한 사람들은 대부분 극심한 경쟁을 경험하게 되어있다.
나도 어렸을 때는 종종 콩쿠르에 나갔는데
레슨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콩쿠르에서 상을 받은 적도 많았지만 그 만큼 실패한 적도 많았다.
실패할 때면 마음이 우울했다.
하지만 내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이
할머니는 다시 내 비올라 케이스를 닦으시곤 했다
( 용재오닐의 공감 168~9쪽).
그리고 용재 오닐은 너무나 가고 싶었던 커티스 음악원에 지원했다가
합격 통지서를 받지 못해 실제로 실패했다고 느낀적이 한번 있었다고 고백한다.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커티스 음악원.
엄격한 교육으로 유명하며 더 마음에 드는것은 전교생 장학금에
생활비도 지원 받는 아주 명문의 음악 대학원이다.
우리 두찌도 용재오닐과 같은 심정으로 커티스 음악원에 가고 싶어했다.
실패하고 결국 오디션을 통과한 대학원들 중 장학금을
제일 많이 준 다는 메네스대학원을 택했지만 후회는 없단다.
용재 오닐의 고백이 성악하는 딸 아비의 심정을 진하게 찌르고 공감을 먹는다.
콩쿠르의 성적으로 희비가 오락가락했던 지난 시절.
콩쿠르란 발판으로 올라 설수 밖에 없는 그 상황에 숨이 막히곤하였다.
지난 3월
우리 두찌가 메트 콩쿠르 최종결선에 올라 그 덕분에 뉴욕구경을 했다.
누구를 떨어뜨리고 올라 서야하는 콩쿠르.
성공과 실패의 판가름이 일어나는 콩쿠르.
실력과 운이 동시에 따라야한다는 콩쿠르.
양약 아니면 독이 되는 피할수없는 콩쿠르.
어딜 가나
오디션부터 시작하여 무대에 서기까지
긴장과 좌절의 연속....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그 고통을 그 누가 알랴.
그래서 스타를 보면 눈물이 난다.
아름다운 감격에 진한 눈물이 나오지만
무엇보다 스타가 하늘에 오르기까지의 수고을 알기에.....
아니 그래도
무언가 이루었다는 환희와 박수가 있기에
그들은 오늘도 견디고 우리에게 즐거움을 안겨준다.